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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 1

bcga 2024. 2. 4. 17:00


일전에 법정스님의 글과 최순희 할머니가 사진으로 찍은 불일암의 사계를 담은 책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책 중간중간에 정지아 작가의 글이 나오는데 작가는 부모가 지리산에서 최순희씨와 함께 남부군으로 활동했던 인연으로 오랫동안 최순희씨를 알고 지냈다고 한다. 그 글을 읽고서 정지아작가의 작품을 찾다 보니 그녀가 처음 쓴 소설이 바로 [빨치산의 딸]이었다. 빨치산에 대한 소설은 언젠가, 아마 90년대 초로 기억하지만, 이태의 [남부군]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 그 소설을 읽으면서 서로 죽고 죽이는 과정에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르기도 했다. 작가는 이 책이 1947년부터 비합법활동을 시작한 이른바 구빨치 였던 자신의 부모님의 삶을 다룬 실록소설이라고 말한다. 1990년 출간직후 이적표현물로 분류되어 판금조치를 당했다가 2005년 새롭게 복간했다고 한다. 전2권으로 되어있는 작품은 1권에서는 1947년부터 전쟁이 끝나는 시점까지 백운산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구빨치들의 투쟁이, 그리고 2권에서는 전쟁 이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빨치산의 활동을 담고 있다. 1권을 읽으면서 이 소설이 비합법활동을 시작한 구빨치 들의 투쟁기록이기에 앞서, 전남 구례, 화순, 곡성지역 농민들이 살아낸 우리 현대사의 일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1권의 프롤로그는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전까지 빨치산의 딸로서 살아온 유년시절에 대한 회고이다. 초등학교 때 자신의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것을 친구들이 무심코 말하는 바람에 알게 된 작가. 그때부터 그녀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감옥에 가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몰랐던 그녀에게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사실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끄떡하면 종북으로 몰아 부치고 사람들은 종북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1970년대 당시에는 지금과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나 다르던 시절이었다. 학교마다 공산당이 싫어요 를 외치며 죽어갔다던 이승복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허구한날 반공 궐기대회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그들에게서 멀어져 갈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자상하고 자신을 귀여워해 주던 아버지가 빨갱이라니.. 자신들의 사정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은 생각에 그녀는 어머니를 졸라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빨갱이 딸이라는 딱지대신 지독한 가난이었다. 중학교까지 마쳤지만 그 때 처음으로 연좌제라는 것이 있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 또한 빨갱이였으며 그래서 거주이전의 자유까지 제한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공부에 뜻을 접었다고 한다. 1979년 광복절 특사로 아버지가 풀려 나오고 구례에서 터를 잡자 그녀도 구례로 내려왔다. 부모를 원망하고 좌절하면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녀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알게 되면서 빨치산의 딸이라는 표지가 부끄러운 것도, 죄스러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독재정권들이 그들에게 덧씌운 허물을 벗겨내고 비로소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그들의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믿고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프롤로그를 읽는 내내 작가인 그녀가 청소년시절 겪었을 마음고생에 가슴이 저렸다. 남에게 얘기할 곳도 없이 혼자서 속으로 삭혀야만 했을 아픔들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년에도 몇 번씩 열리곤 했던 반공 글짓기대회, 반공 표어, 포스터 대회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열렸던 반공궐기대회, 당시 학생들이라면 모두가 겪었을 일상들이 그녀에겐 아마 지옥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그녀가 부모님을 이해하고서 재구성한 그들의 삶이 단순한 빨치산의 삶이 아니라, 당시를 살아내었던 기층민중의 삶으로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불행했던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남로당 소속으로 1947년부터 남한에서 비합법활동을 시작한 빨치산의 일원이었던 부모님의 삶을 저자가 사실에 입각해 재구성한 실록소설이다.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띠기는 했지만 빨치산 활동에 직접 참여했던 인물들의 체험과 증언에 의해 철저히 뒷받침됐다. 전개되는 사건의 흐름과 지명,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물론, 사용된 단어나 구호까지 당시 빨치산들이 쓰던 대로 최대한 살리고 있어, 독자들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을 넘어 한동안 그늘에 감춰진 채로 사장될 뻔했던 우리의 과거사를 다시 들여다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복간판 서문
프롤로그 - 빨치산의 딸

제1부 조국이 부르다
1. 혼돈의 역사 / 2. 운명의 길 / 3. 5.10단선 반대투쟁 / 4. 한민족에게 총을 겨눌 수는 없다 / 5. 백운산의 봄 / 6. 지리산 호랑이 박종하 / 7. 남한 유격투쟁의 전범 9.16결투 / 8. 중앙당을 연결하라 / 9. 시련의 시기 / 10. 드디어 해방이다! / 11. 인민의 나라 / 12. 김일성 수상의 남반부 순시 / 13. 어머니의 눈물 / 14. 9.28후퇴작전, 그 짧고 무더웠던 여름 / 15. 다시 백운산으로 / 16. 곡성군당 위원장을 맡다 / 17. 빨치산 생활에 대비하다 / 18. 세계 최초의 세균전 / 19. 꿈 이야기 / 20. 공포의 네이팜탄 / 21. 지리산 파송작전 / 22. 드디어 남부군을 만나다 / 23. 곡성 해방작전 / 24. 수도사단의 대공세 / 25.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 26. 봉두산 분트 시절 / 27. 지하침투 제1호 / 28. 어쩔 수 없는 선택 / 29. 새로운 생활 / 30. 끊임없는 추적 / 31. 체포, 그리고 사형선고 / 32. 남한 사회주의자의 최후